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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 이야기

장애를 극복한 FC서울의 주장 -곽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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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8일

두번쨰로 알아볼 이야기는

고교시절 경기를하다가

상대가찬공에 왼쪽눈을맞고 실명상태가

되기도했고 허리디스도 오기도했으나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낸 선수입니다.



바로 곽태휘 선수입니다.

곽태휘(2017시즌 서울의 주장)

생년월일: 1981년 7월 8일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

신장: 188cm 몸무게 85kg

프로입단: 2005년 FC서울


경력

FC서울: 2005~2007

전남 드래곤즈: 2007~2009

교토상가 FC: 2010

울산현대: 2011~2012

알 샤바브FC: 2013

알 힐랄: 2013~2016

FC서울: 2016~


국가대표 56경기 5골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장애를 극복한 한국 최고의 수비수

남들보다 늦고 어려운환경에 축구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국가대표까지 이뤄낸 선수


사실 곽태휘선수는 중학교시절 멀리뛰기 선수였다고합니다.

하지만 왜관중학교 3학년시절 축구에 흥미를느꼈고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하고싶다고 아버지에게 전했으나

처음에는 아버지가 만류하셨다고하네요

순심고 1학년시절에는 등교거부까지하는상황이 오자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고 허락을 얻은후에

대구공업고등학교로 찾아갑니다.

하지만 당시 곽병유감독이 너무늦은시작이다.

졸업할때까지 출장을 못할수도있다고말했습니다.

하지만 테스트를 받은후에 곽병유감독의 마음을돌렸꼬

축구선수로서 첫발을 내딛게됩니다.


고교 축구선수시절 이때 시련이찾아옵니다.

당시 3학년 진학을 앞둔 2학년시절 충주상고와 연습경기때

비가와서 미끄러운 경기장 상태때문에 넘어진 곽태휘선수가

상대선수가 찬 공을 미처 피하지못하고

왼쪽눈을 강타당하게됩니다.

이때 강타당한 왼쪽눈은 망막이 찢어져버렸고 12시간동안

망막박리수술을 받았지만 왼쪽눈 실명은 피할수없었다고합니다.


주변사람들은 곽태휘 선수를 만류하면서 다른길을 찾으라고했지만

곽태휘선수는 축구선수꿈을 포기하지않고

1년간쉬고 복학했지만 다시 허리디스크가 발병합니다.

하지만 디스크마저도 이겨낸 곽태휘선수는

곽병유 감독의 조언에따라 중앙대에 입학을 하게됩니다.

중앙대시절 주장까지 했다고합니다..


졸업후 k리그에서 당시 안양LG(現FC서울)에서 곽태휘선수를 데려가겠다고

입단제의를 해오면서 곽태희선수는 서울로 향하게됩니다.


다시 대학4학년시절 3년동안 상비군으로 활약했던 곽태휘가

주전경쟁에서 밀리면서 올림픽 본선진출이 좌절되고 여기에

어깨근육 부상까지오면서 선수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겨내고 당당하게 서울FC로 입단을합니다.


입단당시에는 주로 로테이션멤버로 리그컵에서 주로 출장했으나

입단 3년만인 여름 이적시장에서 서울이

전남의 김진규를 데려오기위해 전남과 서울이 트레이드를하면서

곽태휘는 전남으로 향하게됩니다.

당시에 곽태휘선수는 불만스러웠지만

이는 나중에 엄청난 터닝포인트로 작용합니다.


이적후 허정무감독의 총애를받으면서 주전자리를 꿰찼고

2007년 포항과 FA컵 결승전에서 프리킥골을 성공시키기도하며

그해 FA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국가대표때는 당시 허정무감독의 부름을받고 이후

조광래 최강희감독까지 계속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곽태휘선수도 유리몸이었는데요...

서울에서는 로테이션멤버로 활약

전남에서는 FA컵 결승전골

2008년시즌에는 두번이나 수술대에 오르면서

전남에서는 한시즌을 온전히 치룬적이없습니다.


교토상가에서 활약후 돌아온

2011시즌 곽태휘선수는 별다른 부상없이

리그컵 우승과 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후에는 사우디리그를 진출하였고

2016년7월 FC서울로 다시 돌아왔고

지금은 2017시즌 주장으로 시작을 하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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